이 블로그 검색

2014년 7월 30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성경대로 여자성도들이 머리수건을 씁니다~

머리수건 규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예배때 여자성도들이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립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천주교회로 오해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수건규례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알려주신 새언약의 규례로 성경에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린도전서 11:1)


사도 바울은 먼저 성도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이 자신의 사상이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이어 예배 때 여 성도들은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머리수건 규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배드릴 때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이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의미는 구약의 율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 앞에서 수건을 벗는 행위를 아주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또한, 포로로 잡혀온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수치스러움을 씻기 위하여 그 여자의 머리를 밀었습니다.

다시 말해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말씀은 대단히 수치스럽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 중에서도 수건을 쓰지 않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수건을 왜 쓰는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길 여자가 머리수건을 쓰지 않으면 욕되게 하는것이다 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따라 행한다면 여자는 머리수건을 반드시 써야 하는것 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바울 또한 머리수건을 써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경건한 모습으로 나아가야할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욕된 모습으로 나아간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올지 못하게 보일까요.

머리수건을 써야함을 성경을 통해 알려주는바 하나님의교회 에서는 여자는 머리수건을 쓰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대로 행하는 하나님의교회 오셔서 올바로 행함과 믿음을 가지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안쓰고 하는 것은 작은 행위 이고 사람이 보기에는 별 차이도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작은것에 충성한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한다 하셨으니 절대 작은것이 아니겠지요.(눅16:10)

더욱이 하나님께서 너울(수건)속에 있는 모습이

눈도 이쁘고 머리도 이쁘고입도 이쁘고 뺨까지도 석류와 같다 하셨습니다.(아 4:1~)

2014년 7월 29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알곡 교회와 가라지 교회

[ 하나님의교회 역사 ]

알곡 교회와 가라지 교회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와 교파가 있다. 
모두 자신들의 교회가 정통교회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 많은 교회 중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통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와 교파가 있다. 모두 자신들의 교회가 정통교회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 많은 교회 중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통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정통성을 지닌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그것이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24~30)

주인의 농사를 훼방하기 위해 원수가 뿌린 것이 가라지다. 가라지는 곡식과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해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의 구별은 어렵다. 이 점 때문에 비유 속의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했다. 주인은 일꾼들에게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두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그 밭은 온통 번식력이 강한 가라지 밭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라지는 아무리 많아도 잡초다. 결국 추수 때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르게 된다.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같은 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36~43)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가장 큰 특징으로 ‘불법’을 꼽으셨다. 불법을 행하는 교회는 가라지 교회이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교회는 알곡 교회다. 하지만 비유 속에서 말씀하셨듯이 세상에는 알곡보다는 가라지가 더 많다. 이는 초림 예수님께서 세워주셨던 하나님의 계명들이 예수님 십자가 이후 무참히 훼파되므로 온 세상에는 불법을 행하는 가라지 즉, 거짓 교회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농부가 원하는 것은 알곡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불법을 행하는 자들도 겉으로는 하나님의 선지자 노릇을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행했다. 예수님의 비유처럼 겉으로는 절대 판단할 수 없는 것이 가라지다. 하지만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수 있다고 하셨다(마태복음 7:16). 그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그들이 가라지라는 것을 증거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모습이 비슷해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가라지로서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리고 결국 가라지는 곳간에 들어가지 못하고 풀무불에 던져지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의 많은 교회 중 어느 교회가 가라지 교회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알곡이 뿌려졌던 사도시대의 신앙에 대해 조명해봐야 한다. 성경에서는 우리들이 구원받으려면 불법의 씨가 뿌려지기 이전의 신앙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초대교회의 신앙과 진리를 고수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에베소서 2:20)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 직접 듣고 배운 사도들의 가르침대로 행한 사도시대의 진리가 완전한 진리이므로 알곡이 되기 위해선 이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규례로 삼으시고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그 가르침대로 사도들도 안식일을 지켰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2)

이로 보건대 안식일은 가라지가 뿌려지기 이전의 순수한 하나님의 진리다. 이와 반대로 오늘날 기성교단이 지키고 있는 일요일은 사도시대 이후 덧뿌려진 가라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 하나님의 절기 또한 가라지가 뿌려지기 전 예수님과 사도들이 지켜온 하나님의 법이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6:17~28)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사도행전 2:1~4)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7:2, 37~39)

그러나 유월절은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됐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기들이 하나 둘 사라져 온 세상은 가라지 천지가 되고 말았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 AD 354년 성탄절 도입, AD 568년 십자가 숭배, 1798년 추수감사절 등이 그 증거다. 이와 함께 여성도의 머리수건 문제도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고린도전서 11:1~6)

예배드릴 때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남자는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 초대교회에서 지킨 하나님의 진리다. 이 또한 가라지가 뿌려지므로 변개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알곡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모두 지키는 곳이다. 가라지인 불법이 뿌려지기 이전의 순수한 진리를 지키는 성도들이 있는 곳이다. 가라지가 만연한 이 시대 우리가 찾아야 하는 알곡 교회는 하나님의 이 모든 진리를 고수하고 있는 교회다. 이 교회가 순수한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는 정통교회인 것이다.

2014년 7월 25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사람과 영혼

사람과 영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인간의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에 답을 던지다.

샘이 죽은 후 몰리는 혼자였다. 잦아지는 그리움에 슬픔이 복받쳐도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와 함께했던 소파에 앉아 샘을 그리워하던 몰리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오다메였다. 그리고 몰리는 깨닫게 된다. 샘이 영혼의 상태로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1990년,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한 장면이다. 전반부의 안타까움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이 장면에 이어 몰리는 결국 샘을 만나게 된다. 오다메 속에 들어온 샘의 영혼과의 재회는 보는 이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샘의 영혼이 던지는 메시지보다 ‘사람에게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더 가지게 된다. 과연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영화에서 샘의 영혼은 몸을 벗어나 활동하며,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로 설명된다. 물론 영화는 픽션(fiction)이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인 영혼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사람의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22)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몸으로 돌려보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아마도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 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옷이 아무리 비싸도 저절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몸이다. 벗어놓은 옷과 같다. 중요성을 논하자면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믿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사랑과 영혼’의 몰리처럼 말이다.

2014년 7월 23일 수요일

우분투(UBUNTU)

우분투(UBUNTU)

한 인류학자가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그는 아이들을 불러 모은 뒤, 재미있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것을 차지하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게임 설명을 하고 “시작”을 외치자마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이들이 각자 앞다퉈 달려가는게 아니라 모두 함께 손을 잡고 가서 정답게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인류학자는 물었다.
“왜 모두 함께 갔니? 1등으로 가면 다 가질 수 있을 텐데.”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분투!”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덧붙였다.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
 ‘우분투’란, 반투족 말로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편 133:1~3)

2014년 7월 22일 화요일

신기하죠~~십자가없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에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우상이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교회입니다.








십자가가 없다구요??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이요

하나님을 믿는 교회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면

당연히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는 우상이라고 말씀주시며

십자가를 세우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출(20 : 4 ~ 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결국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는 우상이라 말씀 주시며

세우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교회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십자가가 없는 하나님의교회로 오길 바랍니다.

2014년 7월 20일 일요일

해질녘 강릉 안목항

얼마전 다녀왔네요~ 저녘 노을이 드리운 바다가 이뻐 찰칵~!!

2014년 7월 18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 멜기세덱, 예수님, 안상홍님.


하나님의교회 멜기세덱, 예수님, 안상홍님. 

이분들의 공통점이 있다. 특이하게도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빌어주셨다는 점이다.

멜기세덱에 관한 기록은 약 4천 년 전,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과의 만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17~20)

구약시대 당시 제사장들이 많이 있었지만 떡과 포도주로 복을 빈 사람은 멜기세덱뿐이었다. 신약에 와서도 유월절에 다른 제사장들은 모두 짐승으로 제사드렸지만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주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하신 약속에 대한 이행이었다. 이 말씀을 종합해보면 예수님은 유월절에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유일하게 유월절 떡과 포도주로 영원한 생명을 이어받게 해주신 분이 있다. 안상홍님이다. 안상홍님은 325년 니케아종교회의 이후 사라져버린 생명의 진리, 새 언약의 유월절을 다시금 가지고 오셔서 멜기세덱의 예언을 완전하게 이루신 분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이사야 25:6~9) 

2014년 7월 17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예수님은 우리와 어떤 관계일까?

예수님은 우리와 어떤 관계일까


여호와의증인이나 다른 교회들이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조금만 이해하더라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새겨보겠습니다.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생명을 주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이 아닌 당신의 살과 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과 피로써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을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요?
당연히 아버지가 아니겠습니까?

또 다른 구절에서도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지은 죄로 인해 영원히 사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다시 한번 알려주는 구절입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다른 이가 아닌 자녀들이 혈육에 속하여 사망의 종노릇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녀들이란 바로 우리들입니다.
위 구절에도 분명 우리는 '예수님의 자녀'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시면 죄를 짓고 이 땅에 내려오기 전 하늘에서부터 우리가 바로 예수님의 자녀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태복음 9:13)

이 두 구절을 종합해서 새겨본다면 예수님께서 죄인인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혈육에 속한 자녀들과 동일한 모습과 입장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늘에서 예수님을 누구라고 불렀을까요?
아버지라고 불렀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근본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셨고 우리가 죄로 인해 사망의 종노릇하고 있기에 그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죄인의 몸을 쓰시고 이 땅까지 오신 것입니다.
부디 삼위일체의 진리를 명확하게 이해하시고 올바른 구원의 길을 꼭 찾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14년 7월 16일 수요일

마지막아담 안상홍님!



재림 예수님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아담으로 표상된 재림예수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롬5/14] " 그러나 아담으로 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아담은 예수님에 대한 표상이므로 마지막 아담은 마지막 때 오실 즉 재림에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시는 재림에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살려주시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리니"

마지막 날에 등장하는 마지막 아담을 우리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서 살려주셔야합니다.




[마 26/26~28] " 저희가 먹을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낸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지막 날에 우리를 살려주는 진리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2014년 7월 15일 화요일

생명과의 비밀을 알려주신 안상홍님 믿는 하나님의교회

[창세기속에 감추이신 생명과의 비밀]

지금 지구에는 70억 가까운 인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70억 인구가 각각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죠...그러나 인생의 끝은 다 똑같습니다. 죽음!
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다가 맞이하는 가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성경의 기록을 보면 인생들의 죽음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살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세상말에 문제가 있는 곳에 해답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죽음이 에덴에서 시작되었듯이 살수 있는 방법도 에덴에 있습니다.

------------------------------------------------------------------------------------------
마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
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거서들을 드러내라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

2천년전 예수님은 창세기안에 감추인 비밀을 드러내주시러 즉, 찾아 주시고 알려주시려 오셧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창세기속에 감추인 많은 비밀중에 생명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고 동산중앙에 선악과와 생명과나무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법을 주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지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뱀(마귀)의 꾐에 빠져 먹고 말았죠

------------------------------------------------------------------------------------------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모든 사람들이 아담과 하와와 같은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음을 비유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럼 살수 있는 방법은?

창3:22~24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죽을 죄인이라 할찌라도 생명과만 먹으면 무조건 살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먹지 못하도록 생명과의 길을 막으셨기에 생명과를 먹지못해 죽음에 이를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시대 우리도 영생할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생명과를 먹으면 됩니다. 그러나 생명과는 비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생명과의 실체를 알려주시러 오셨답니다.

생명과의 실체는?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생명과의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그럼 생명과의 실체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실수 있을까요?

-------------------------------------------------------------------------------------------
마26:19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에덴동산의 생명과의 실체는 진리적으로 바로 유월절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에덴동산의 생명과의 길을 막으신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열어 주실 분 또한 하나님밖엔 없는 것입니다.

2천년전엔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에덴동산의 생명과의 실체인 유월절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유월절이 마귀에 의해 AD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시대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두번째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히9:28 이와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

이 예언에 따라 이시대 다시한번 생명과의 길을 열어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안상홍님 이십니다.
안상홍님은 생명과의 길을 친히 열어주셔서 죽을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생명과의 실체인 유월절 진리를 허락해 주신
재림그리스도요 하나님 이십니다.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성경이 증거하는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성경이 증거하는 어머니하나님]

[계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성경에는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지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만물 중 생명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생명을 가진 존재는 어머니로 부터 물려받습니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 홀로 생명을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도 그렇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의 생명은 육의 어머니로 얻듯이 영의 생명 또한 영의 어머니로부터 최종적으로 주어집니다.

[창 1/26]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사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 · ·"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라고 단수로 표현하지 않으시고 "우리"라고 복수로 표현하였습니다.

[창 1/27]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면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남성적의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의 형상의하나님 두 분이 존재하시다는 뜻입니다.
남성적의 형상의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이라 불러왔습니다.
그러면 여성적의 형상의 하나님을 누구라고 불러야겠습니까?
어머니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 분은 성경이 증거한는 하늘 어머니 이십니다.
오직 이 시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늘 어머니를 믿고 영접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



2014년 7월 12일 토요일

생명수 주시는 어머니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교회

영혼문제를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그릇된 생각과 행동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허비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근본 영혼문제를 깨닫게하여주신
 성령이신 아버지 안상홍님과 신부이신 하늘 어머니께서 내려주시는 생명수를 받고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식이 많아도 지혜가 있어도
결코 생명수 주시는 아버지 어머니를 나의 힘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나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성경을 믿고 성경이 증거하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부르시는 그 음성을 두 귀 쫑긋 세우시기 바랍니다.




계22:17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이신 아버지 안상홍님 신부이신 하늘어머니께서 거하신 하나님의교회에 생명수 받으로 오세요~~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새언약 안식일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예배일은 안식일 (토요일) 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찾아주시고 하나님의교회를 친히 찾아주신 안상홍님을 발견해 보시길바랍니다...

오늘 날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주일예배(일요일)를 지키고 있지요...


그러나 성경에는 주일예배를 지키라는 말은 단 한구절도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에 주일을 지키라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구절을 살펴보니

계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라는 구절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주일을 지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서 "주(主)의 날"이란 어떤 말을 말할까요???

보시는 바와같이 여기 '주'는 주인 '주'로써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 곧 예수님의 날이 안식일임을 증거하고 있지요..






마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인자'곧 예수님의 날은 바로 '안식일'입니다....






주의 날이라 해서 그들이 말하는 주일예배(일요일)가 아니란 말입니다...








성경은 오직 안식일을 지키라(창2:1.출20:8)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안식일을 지켜야지 성경에도 없는 주일 즉 일요일예배를 지켜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의교회 만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참 진리교회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찾아주시고 하나님의교회를 친히 찾아주신 안상홍님을 발견해 보시길바랍니다...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최고의덕-하나님의교회

한 제자가 스승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덕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겸손이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둘째도 겸손이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겸손이다.”
제자는 다시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겸손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교만이다.”
“교만은 무엇입니까?”
스승은 대답했습니다.
“스스로 ’나는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만이 가득 차면 교만이 생깁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불만과 교만이 없어지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어머니 교훈 中 일곱 번째)